아마 나의 불안은 평범할 것이다. 다만 지금 권태를 느끼고있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윤형근작가의 일기와 드로잉을 성기게 꿰어놓은 신간을 빠르게 읽었다. 글쓰기만 치면, 놀랍도록 간소한 글쓰기였다. 최근에 듣고있는 수업에서 스치듯 나왔던 이야기인데, 전쟁을 경험한 작가들이 유독 시각적 자극을 극도로 없앤 미니멀한 작업을 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혹은 다다처럼 써캐스틱?) 의미심장한 징후다. 동갑내기인 도날드 저드도 한국전에 군인으로 복무했었고, 훗날 ck화보에서 도날드 저드의 침대맡에는 윤형근 그림이 있었다. 어쨌든 윤형근 작가의 기록에는 수사가 치덕이지 않고, 총천연색으로 감정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별로 없는 편이다. 편지들 마저도… 그림과 정말 닮았다. 그냥 성격도 한 몫 했을 것 같지만. 그래서일까? 상대적으로 이 기록을 둘러싼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소개글들이 장식적으로 보인다. 이미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난 작업들인데 아직도 사실상 작업을 더 작아보이게 만드는 해석 투성이고… 왜 한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정확하게 이해될 수 없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점점 현재 나와 동시대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일을 제대로 관찰하는 일이 내게 중요한 일로 다가오고 있다. 어쨌든 그의 글 사이에 있는 여백 자체는 마음에 든다. 그 당시를 찍은 사진을 관찰하듯 중간중간에 나오는 익숙한 이름(ex.우환이형, 밥을 많이먹는 욕심장이 서보 등등)과 행선지들을 유심히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분명 이 텍스트가 다가 아닐텐데, 어쩌면 더 길고 때론 멍청하고 찌질한 기록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누가 어떤 기준으로 글들을 별러낸건지 책에서 투명하게 보이는게 고통이다. 책의 구성에서 드러나는 목적이 중요한데, 흐름에 그게 전혀 없다. 기록오픈이라는 형식은, 날것을 내놓아 새로운 의미를 건져내는 일이어야 마땅한데… 윤형근선생이라면 과연 이 책의 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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