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발 이전의 일기. 쪽팔리지만 두려울게 없어 올린다. 지나보니 딴사람이 하는 말들 같아 웃기네.
격리해제된 순간부터 새벽마다 혼자 차에 내려가 쳐울었다. 하루는 캐나다에 가있는 S랑 전화하면서도 울었다. 코로나 기침을 엄청 해대면서... 딴 이유가 아니라 미술때문에 복장이 터져서 울었다. 그말인즉슨... 내가 단지 뭉뚱그려진 개념인 무언가를 너무 사랑하는것같다..어쩌라고 썅.. 이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흑염룡은 내가 반백살이 되도 안죽을거같다는 예감에 눈앞이 캄캄한 것이다....
왜 복장이 터지는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을 둘러싼 근거리의 모든 게 트루먼쇼같아서이다. 다같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커다란 벽 앞에서 겉돌 수 밖에 없는.
학부때 읽었던 정수진작가 작업노트중에 너무 공감가는게 있었는데, 대충 예쁜거 귀여운거 사실적인거 추상적인거 엽기적인거 등등 다 싫고 그리기 싫다는 내용이었다. 그 권태의 껍질을 입은 말들이 이 사실은 모든 걸 너무너무 제대로 그려내고 싶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느꼈었다. 정확함에 대한 사랑,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겨냥에 대한 욕망. 그리고 몇년 후에 그는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누구도 제대로 이해 못할 무서운 조형이론을 일궈버렸다. 너무 세밀해서 눈앞이 까마득해지는 그런 것
사람들이 의레 순수조형이라고 일컫는 것에 지금의 인터페이스에 연습된 사람들이 충분히 만족할만큼의 자극이나 사실성이 깃들기는 정말 정말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하면 할수록 정말 정말로..정말로...어렵다.
내가 스스로 복장터지는 부분을 해결하려면 결국 극혐의 강을 건너야 한다. 더이상 미룰 수 없어서 하기 싫고 무서워서 울고싶어지나?
친구가 이 새벽에 미술때문에 복장이 터져서 주차장에 세워진 차에서 전화통 붙잡고 우는 사람 니밖에 없을꺼라고 하는데
응원하는 말이었지만 갑자기 정신이 확 들며 부끄러워졌다. 너무 사랑하면 컬트가 되고 파시스트가 된다.
아무래도 격리하는동안 손이 쉬어서 정신이 나간것같다. 뜨개질하고 종이라도 접었으면 이 몇일이 이렇게 이상하게 안흘러갔을텐데.
그래서 만기출소한 기분으로 대전에 가서 이응노 미술관을 보고왔다. 거긴 갈 때마다 수호천사가 사는 곳에 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가슴이 활짝 열리는 느낌. 물론 고속도로에서 서울에 가까이 올수록 다시 가슴 쪼임. 그래도 열렸던 그 느낌을 잊지말아야해. 똥칠을 하든 뭘 주물럭거리든간에 어쨌든 사랑을 못담았어?? 그럼 미안한데 실패야 그걸 인정해. C와 서울에 돌아와서 주차장에서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 엄청 길게 이야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