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치 어떤 현상처럼 손절이란 말이 자주 보인다.
인문학 컨텐츠 몇개 틀어본 이후로 유투브에 나르시시스트 구분하기 해로운 사람 손절하기 어쩌구 이런 콘텐츠가 많이 뜬다. 한국이라서 그동안 곪아온 관계지향적 문화+효율에 대한 과도한 관심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경향이 유독 심해지는 듯도 함. 근데 자꾸 괴로움의 이유를 밖에서 찾으면 정작 자기 허물은 언제 한번 돌아보나?..
개인적으로 이런 흐름이 아주 건강하게 느껴지진 않는듯. 딴게 아니라 손절과 같은 결심은 자기 자신한테도 어떤 방식으로든 무의식에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딱 한 번, 수 년전에 아주 소중했던 사람의 특정한 습관때문에 절교를 하기로 결심한 적이 있다. 그 분이 갑작스러운 단절때문에 느꼈을 감정들의 시간을 존중해 그 결정을 번복하진 않았지만, 지나서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인간사의 다난함을 지금만큼도 이해하지 못했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좋은 쪽으로 핸들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용기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분에게 감정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기대하고 있어서 더 그랬던듯. 그래서 어쩌면 가장 수동적인 선택인데 강단있는 선택이라고 착각한 것.
그 사람한테서 유독 싫어했던 행동들을 어느 날 내가 하고있는 경우도 있었다. 내 상황에 대해 누구한테 어떤 변명도 하기 싫고, 그럴 필요도 없이 그냥 그렇게 되는 일도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당시에 그 분은 나의 좋은 점부터 못난 점까지 늘 관대하게 바라봐주었고, 나를 인간으로서 정말 사랑해준 친구였기에 지금도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해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더 솔직해지자면 아주 가끔은 마음이 아프다. 그 통증이 나에게 관대함을 참교육해주었음.

아무튼 손절하냐마냐 고민까지 가기전에 서로 적당한 스페이스를 지켜주는게 좋은 것 같다. 어차피 모든 게임은 영원히 진행되지 않는데 뭐하러 전원코드를 뽑나.
그리고 남에 대한 엄격함이 어느날 스스로를 겨누기도 하니까, 스스로 괴롭힐 이유를 굳이 하나 더 만들고 싶지 않다.

가끔은 ‘잠시 거리를 둬요.’ 이 말만큼 좋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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